17세 이하 우리나라 여자축구가 세계 정상에 올랐습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룬 기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초등학교 18개, 중학교 17개, 고등학교 16개, 대학교 6개, 등록선수는 1450명.
이게 우리나라 여자축구의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는 사실은 실로 놀랍기만 합니다. 비록 월드컵, 20세 이하 월드컵보다 변수가 많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17세 대회라도 해도 한국 소녀들이 일궈낸 우승컵은 실로 대단합니다.

선수도 부족하고 팀도 적은데 이런 좋은 성적을 낸 비결은 무엇일까요.

혹자는 골결정력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조직력이 훌륭한 결과라고도 합니다. 다른 사람은 여민지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다고도 합니다. 물론 이런 해석들은 모두 맞는 해석입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데에서 좀더 근본적인 비결을 찾고 싶습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U-17 여자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태극소녀들이 시상대 위에서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

 
선수가 부족하고 팀도 적은 상황 속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포지션 혼란입니다. 소속팀에서는 공격수로 뛰는데 대표팀에서는 수비수로 뛰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17세 이하 여자대표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필드 플레이어 18명 중 소속팀(소속 학교)에서 수비수로 뛰면서 대표팀에서도 수비수로 활약하고 있는 선수는 김빛나 딱 한명입니다. 나머지 수비수 6명은 학교에서는 공격수, 공격형 미드필더 등 공격요원입니다.
 
왜 소속팀에서 공격수로 뛰는 선수가 대표팀에서 수비를 할까요.

그건 간단합니다. 선수가 부족한 상황 속에서 재능이 있는 선수는 공격수를 하고 그렇지 못한 선수는 수비수 또는 골키퍼를 하기 때문이죠. 즉 소속팀에서 수비수로 뛰는 선수들이 개인기량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결국 수비 경험은 없어도 개인기가 좋은 공격수들을 데려다가 대표팀에서 수비수로 뛰게 하는 거죠. 
이렇게 꾸려진 팀은 사실 전력이 불안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그런 우리 소녀들이 월드컵에서 우승했습니다. 그 비결은 조기성인화에 있습니다. 적은 팀에서 선발된 소수 인원에게 이기기 위한 축구를 강하게 훈련시킨 결과가 월드컵 우승으로 이어진 거죠.

17세 나이는 유럽과 미국에서는 축구를 즐길 나이입니다. 이기는 축구보다는 재미난 축구, 조직 축구보다는 기술축구를 익힐 때죠. 그런데 우리 선수들은 이 때 기술 대신 조직을 배워야합니다. 선수 수가 많고 팀이 많은 나라에서는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옵니다. 개인기가 좋은 이들을 우리가 이기기 위해서는 조직력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 어린 선수들은 재미난 축구, 즐기는 축구, 창의적인 축구를 배울 시기에 슬프게도 이기는 축구, 조직적인 축구를 익히고 있습니다. 클럽시스템 하에서 여가를 이용해 축구를 즐기고 있는 유럽, 미국의 어린 선수들은 이기는 축구, 90분 내내 사력을 다해 뛰어야하는 축구, 협력수비를 해야 하는 축구에는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보다 먼저 조직적인 성인축구를 배운 우리 선수들이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교우위를 갖고 이길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여기에서 곰곰이 생각해볼 게 있습니다. 과연 조기 성인화가 좋은 것일까요. 공부로 따지면 중학생, 고등학생에게 대학에서 배워야할 것을 미리 가르친다면 과연 그게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까요.

축구에서 조기 성인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당장 도움이 되는 것 같아도 나중에는 해가 될 수도 있죠. 지금은 약인 것 같지만 미래에는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것은 월드컵 역사가 그대로 보여줍니다.
 
남자 17세 이하, 남자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우승을 경험한 나라는 총 13개국입니다. 그 중에는 나이지리아, 사우디아라비아, 멕시코, 스위스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나라 중 남자월드컵에서 우승한 나라는 없습니다.
여자 17세 이하, 여자 20세 이하 월드컵 우승국은 모두 4개국인데 독일, 미국, 북한, 한국입니다. 여자는 독일, 미국은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지만 북한, 한국은 아직 없습니다. 즉 어릴 때는 잘 하다가 성인이 되면 유럽에 밀린다는 것이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린 시절 우리가 이기는 축구를 배울 때 유럽, 미국은 즐기는 축구를 익혔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기술축구를 더 배우지 못한 채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은 뻣뻣해지고 결국 새로운 기술을 배울 시기를 놓치게 되고 말죠.
그러나 유럽, 미국은 우리와 정반대입니다. 어린 시절 다양한 기술을 배우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익힌 선수들이 성인이 돼가면서 조직축구를 배우며 체력을 끌어올립니다.

결국 성인이 되면 한국은 기술이 부족한 상태에 그대로 머물게 되고 유럽, 미국은 어릴 때 익힌 좋은 기술에다 조직력과 근본적으로 아시아를 능가하는 체력까지 겸비하게 되는 거죠. 성인대회에서 아시아가 세계 정상권에 가까이 가지 못하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다시 17세 이하 월드컵 대표팀으로 돌아가 보죠.

우리 선수들도 기술을 배워야하는 어린 나이에 세계대회를 준비하기 위해서 조직축구를 익혀야했습니다. 선수가 부족한 탓에 포지션이 혼란스러워지자 결국 조직훈련을 더 해야 했죠. 그러나 이런 조기 성인화는 미래를 보장하지 못합니다. 앞서 말씀을 드린 대로 이번 대회 우승 멤버들이 앞으로 서너살 더 먹어 스무살이 넘게 되면 세계 벽은 오히려 더 높아 보일지 모릅니다.

해답은 결국 팀을 늘리고 선수를 늘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해야지 청소년시절 오른 정상을 성인이 돼서도 지킬 수 있습니다.
물론 팀과 선수를 늘리는 것은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는 일입니다. 앞으로 1,2년 사이 대학팀이 스무개가 넘고 실업팀이 서른개가 넘는다고 해도 한나라 축구는 그렇게 금방 변하지 않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축구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고 그게 최소한 수십년 꾸준하게 지속돼야만 효과를 볼 수 있는 게 축구입니다.
그게 수백년 역사에서 축구를 해온 축구 강국들을 그렇지 못한 나라들이 단기간에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게 과학도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힘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지금부터 시작해야합니다. 지구 역사가 계속되는 한 축구도 계속될 겁니다. 미래를 위해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여자축구를 위해 작지만 건강한 묘목들을 계속 심어야합니다. 그래야만 어린 선수들이 어린 나이에 어른 축구를 배워야하는 슬픈 현상이 사라질 수 있을 겁니다.

Posted by 김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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