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니콜슨 교수가 호주 빅토리아 라 트로브 대학 교수로 재직시절 쓴 유명한 책이 있다. '스포츠와 미디어: 넥서스 다루기(Sport and the Media : Managing the Nexus)'라는 책이다. 니콜슨 교수가 스포츠, 여행, 호스피텔러티 매니지먼트 과목에서 대학원생들을 가르친 교제다. 스포츠와 미디어의 교집합을 넥서스로 규정하고 넥서스를 가장 잘 활용하기 위한 방법을 설명한 내용이다. 지금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스포츠를 공부하는 많은 대학원생들이 즐겨 읽고 있다. 스포츠와 미디어 관계를 가장 효과적으로 다룬 교과서 중 교과서다.

그 책에는 '위기(crises), 스캔들(scandals), 명성(reputations) 다루기' 라는 단락이 있다. 스포츠 사무국이나 구단들이 어려운 상황을 맞기 전과 맞은 후 대처법 이 주된 내용이다. 니콜슨 교수는 그 단락에서 '위기 관리 단계'를 5가지로 나누어 소개했다.

Signal Detection- > Preparation and Prevention- > Containment and Damage Limitation- > Recovery- > Learning 순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실례로 간단히 설명해본다면,

①위기나 스캔들이 있을 것 같다는 이상 징후를 발견한다.

②그게 표면적으로 드러나기 전에 예방하고 그와 동시에 대외적으로 불거질 것에 대비해 대비책을 미리 마련한다.

③그 일이 대외적으로 터질 경우에는 그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한다.

④사태가 정상으로 회복되도록 노력한다.

⑤그 때까지 경험을 토대로 교훈을 얻어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한다.

이는 비단 스포츠단체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회사, 단체, 모임 등 일반적인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공식과도 같다. 이해를 돕기 위해 내가 스포츠 단체 CEO라고 생각하고 단계별로 포인트를 짚어보자.

①에서 중요한 점은 언론에 앞서 이상 징후를 포착해야한다는 점이다. 언론이 먼저 알면 대비할 시간도 없이 사건이 공개된다. 그렇게 되면 나는 조직 내에서 비판, 처벌 징계를 받게 되고 대외적으로도 명성이 실추된다. 물론 사태를 해결하는데도 시간과 노력이 몇배 더 든다.

②단계에서는 내가 언론보다 먼저 알았다면 예방책을 만드는 게 포인트다. 그 일이 발생한 이유를 제대로 파악하고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대비책을 마련해야한다. 이 사실을 언론이 모른다면 나는 나름대로 훌륭한 CEO다. 외부적으로 알려지지 전, 있을 수도 있는 위기를 미리 포착해 예방 및 대비책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똑똑한 CEO라면 혹시 언론이 뒤늦게 알고 기사화할 경우에 대비해 대외적인 대처법도 조속히 마련해야한다.

 
③만의 하나 언론을 통해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하면 사태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넓게 퍼지기 때문이다. 언론이 모르는 ②단계에서 CEO가 대외적인 대처법을 미리 마련해야하는 게 무척 중요한 이유다. 어쨌든 언론을 통해 사실이 알려지고 나면 나는 이 때부터 신속하고 믿을 만하며 통일성이 있고 투명한 방식으로 사태에 대처해야한다. 사실을 숨기거나 상황을 회피하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언론에 정확한 팩트를 전달해주고 대책을 발 빠르게 마련하면서 양해를 구해야한다. 이 과정에서 언론 접촉 출구도 단일화해야한다. 지위가 높고 사실을 가장 잘 아는 고위층이 전문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언론과 접촉하는 게 중요하다. 보도된 게 사실이라면 솔직히 인정해야한다. 만일 사실이 아닌 일이 생기면 그것은 분명하게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야한다. 그래야 사실에 근거한 보도만 나올 수 있고 그래야 추측보도, 반감 보도 등을 줄일 수 있다. 이와 동시에 현실성 있는 예방책과 대응책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홍보해 사태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알려야한다.
 

④앞선 단계에서 필요한 조치들이 잘 이뤄지면 사태는 조금씩 진정국면으로 접어든다. CEO가 솔직하고 적극적이며 사실에 근거해 투명하게 일을 처리할수록 사태가 진정국면으로 접어드는 시간은 짧아진다.

 
⑤시간이 지나면 사태는 어느 정도 해결국면을 맞는다. 여기까지 잘 해도 나는 훌륭한 CEO다. 그러나 하나 더 생각해야할 점은 그동안 겪어온 일과 대처해온 일을 바탕으로 교훈을 얻는 것이다. 교훈을 얻어서 그걸 현실에 잘 반영하면 다음에 같은 사고가 재발될 가능성은 낮아진다. 그리고 설사 사태가 재발해도 피해와 오염을 이전보다는 줄일 수 있고 사태를 해결하는 시간과 노력도 훨씬 반감된다.



 
여기까지 내용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게 세계적인 석학들이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위기 대처법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이해하고 동의한다는 전체 하에 지난해 승부조작 파문에 대한 축구계 대처법을 되돌아보자. 다음은 승부조작 파문과 관련해 지난해 프로축구연맹이 대처했던 내용을 날짜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05. 25 승부조작 가담선수 구속 수사

05. 26 긴급간담회 : 승부조작 후속조치 논의. 연맹, 협회, 16구단 대표 참석.

-검찰수사 적극 협조, 진상조사단 운영, 비리근절대책위원회 설립 준비 등

05. 29 클린 캠페인 시행

05. 30 정몽규 총재 회견 개최(승부조작 관련 대국민 사과)

05. 31 K리그, 16구단 선수단·관계자 전원 참석 워크숍 개최

06. 01 K리그, 불법 행위에 대한 자진 신고 접수(6.1~6.13),
비리근절대책위원회 구성 및 운영

06. 10 각 구단 대표자 간담회 개최 : 창원지검 중간 수사발표 관련

06. 14 불법행위 자진 신고 기간 연장(~6.30), 포상제도 상시 운영. 최대 1억원 지급

06. 17 상벌위원회 개최

- 승부조작 가담자 10명 영구자격박탈 및 직무 영구 상실

- 토토 구매자 1명, 5년 자격정지

06. 30 불법 행위 자진신고 기간 연장(~7.7)

07. 11 승부조작 후속 대책 및 제도 개선안 발표

08. 03 검찰, 승부조작사건 수사 최종결과 발표

08. 25 상벌위원회 개최

- 승부조작 사건 가담자 전원(47명) 영구 자격 박탈 및 직무 영구 상실 징계

11. 07 K리그, 보호관찰 선수와 사회봉사프로그램 < 나눔과 성장 > 시작

12. 15 상벌위원회 개최

- 승부조작 징계 보류선수(4명) 징계(영구 자격 박탈 및 직무 영구 상실)

-가담선수 65명 중 총 62명 징계

 

물론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프로축구연맹과 축구협회 대처가 완벽했다고는 볼 수 없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충분하게 마련하지 못했고 구단, 연맹, 협회 고위층이 자발적으로 책임지는 모습도 거의 없었다. 승부조작파문이 불거지기 전 의심되는 선수를 다른 구단에 알리지 않고 판 것도 비난받아야 마땅하며 미리 이상 징후를 알고도 정신차리지 못하고 안일하게 한 초기 대응은 문제를 키웠다. 그러나 파문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고 수사를 거쳐 사실로 밝혀진 후 나온 대처상황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지난해 축구에서 비롯된 승부조작 파문이 배구를 거쳐 야구까지 강타하고 있다. 지금 배구계와 야구계는 축구가 승부조작파문에 대처한 방식을 조속히 검토하고 야구계 실정에 맞춰 신속하게 시행해야한다. 그게 피해와 오염을 최소화하면서 조금이라도 빨리 야구계를 정상화시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P.S) 우리 속담에 며느리가 싫으면 발뒤꿈치까지 계란과 같다는 속담이 있다. 며느리가 미우면 손자까지 밉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이게 정말 맞는 속담이며 그렇게 생각하는 게 옳다고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아무리 미운 사람도 잘 한 게 있으면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게 마땅하다. 또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나쁜 짓을 하면 야단맞는 게 맞다. 이 글을 보고 "김세훈이 연맹 편이고 협회 편"이라고 말하면서 편 나누기, 흑백논리로 반박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그저 프로축구연맹, 축구협회, 프로구단이 승부조작파문에 대처해온 자세가 대체적으로 옳았다는 걸 말하고 싶고 그걸 야구계, 배구계가 긍정적으로 참고해야한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Posted by 김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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