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올림픽 맞아? 올림픽 해프닝 모음 

  • ■무더기 해프닝이 속출한 마라톤



    1896년 1회 아테네올림픽에서는 전 종목에 걸쳐 여자선수는 없었다. 그러나 한 여성이 남자 마라톤 레이스가 끝난 다음날 비공식적으로 같은 구단을 5시간30분 동안 뛰었다. 생후 17개월 된 아들 둔 여성이었다. 그는 증인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기록도 적어줬다. 그리고 그걸 올림픽위원회에 제출했으나 예상대로 공식 사실로는 인정받지는 못했다.

    1900년 파리 올림픽에서는 미국 마라토너 3명이 1,2위를 차지한 프랑스 선수가 지름길로 갔다며 항의했다. 당시 미국 선수들은 “마라톤 코스를 지나왔는데 왜 프랑스 선수들의 몸과 옷은 진흙이 묻지 않았나. 그리고 나를 따라잡은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기각됐다.

    3회인 1904년 세인트루이스 대회 마라톤은 올림픽 사상 가장 형편없는 레이스였다. 너무 더운 날씨, 먼지 많은 구간 때문에 선수들의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해프닝도 많았다. 토마스 힉스는 트레이너로부터 브랜디가 들어간 흥분제를 먹은 뒤 결승선에 다다를 때 트레이너 부축을 받고 제일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쿠바 출신 펠릭스는 레이스 도중 먹은 사과가 썩은 사과였다. 그는 레이스 도중 잠을 자고도 4위를 한 반면 다른 어떤 선수는 따라오는 개들에 쫓겨 경로를 1마일 정도 이탈한 탓에 9위에 그쳤다.

    1912년 스톡홀름 대회에서는 일본 마라토너 가나쿠리 시조가 레이스 도중 실종됐다. 무더위 속에 의식을 잃고 농가에서 보살핌을 받은 것이다. 그는 대회 조직위에 아무 보고도 없이 그냥 귀국했고 50년 후 레이스를 마쳤다. 그의 마라톤 완주 기록은 54년 8개월 6일 8시간 32분 20.3초. 물론 ‘비공식’이다.

    1960년·로마 대회에서는 아베베 비킬라(에티오피아)가 맨발로 뛰어 마라톤에서 우승했다. 아프리카 최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다. 그리고 그는 18회 도쿄대회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올림픽 최초 2개 대회 연속 마라톤 우승. 에티오피아 황제가 그에게 포상으로 승용차를 선물했는데 그는 공교롭게도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는 두 팔도 있다”며 양궁 선수로 전향해 장애인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1973년 그는 또다시 교통사고를 당해 41세 나이로 죽었다.


    ■초기 올림픽에는 체급 구분도, 체중 제한도 없었다.



    1896년 아테네 대회였다. 당시 역도 경기에는 체중제한이 없었다. 론체스턴 엘리어트(스코틀랜드)와 비고 젠슨(덴마크)이 같은 무게를 들었는데 심판은 좀 더 좋은 모션으로 바벨을 든 젠슨을 챔피언으로 결정했다. 준우승한 엘리어트는 곧바로 설욕했다. 그는 지금은 없는 한손 들기에서 부상으로 극도로 부진한 젠슨을 손쉽게 꺾고 금메달을 따냈다.

    당시에는 레슬링도 체급제한이 없었다. 칼 슈흐만과 조르지오 티타스가 맞붙은 결승전은 일몰 때문에 40분 중단된 뒤 다음날 재개돼 슈흐만이 15분 만에 이겼다.

    1936년·베를린 대회 역도 미들급에서는 이집트 카드라 엘 토우니가 우승했다. 그러나 그는 45분 동안 더 도전해 헤비급 선수보다 35kg이 더 나가는 무게를 들었다. 그가 든 무게는 387.5kg. 헤비급 세계신기록이었고 그게 무려 13년 동안 신기록으로 유지됐다.


    ■나무다리로 금메달

    1904년 세인트루이스 대회에서 있던 일이다. 미국 체조선수 George Eyser가 6개 메달을 땄다. 놀랍게도 그의 왼쪽 다리는 나무 의족이었다.


    ■혼자 뛰고도 금메달

    1908년 런던 대회에서는 올림픽 사상 전무후무하게 혼자 레이스를 뛰고 우승한 일이 발생했다. 육상 400m에서 한 미국 선수가 영국 선수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실격이 선언됐다. 그러나 당시에는 선수 간섭에 대한 룰이 양국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혼란이 야기됐고 조직위는 재경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실격이 선언된 미국 선수뿐만 아니라 다른 미국 선수들도 불참했고 결국 혼자 뛴 영국 선수가 금메달을 차지했다.


    ■모두 지고도 동메달

    1932년 LA 대회 필드하키에는 3개국만 출전했다. 개최국 미국은 인도에 1-24, 일본에 2-9로 패하고도 동메달을 땄다.


    ■진흙탕 농구 결승전

    농구가 처음으로 정식종목이 된 1936년 베를린 대회 때다. 당시 농구는 실외에서 열렸다. 미국이 결승에서 19-8로 캐나다를 꺾고 우승했다. 엄청난 비가 퍼부은 탓에 드리블도 제대로 안 됐다. 미국 조 포텐베리가 올린 양 팀 통틀어 최다득점이 7점에 불과했다.


    ■실격 대신 벌금?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사이클 스프린트 결승에서 독일 토니 메르켄스가 네덜란드 선수에게 파울을 저질러 실격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메르켄스는 벌금 100 마르크를 내고 금메달을 그대로 유지했다. 자국 선수를 비호하려는 개최국 조직위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려 11시간40분 동안 진행된 레슬링 한판

    1912년 스톡홀름 대회 때 일이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준결승전이 11시간40분 동안 벌어졌다. 당시 힘겹게 승리한 마틴 클레인은 너무 지친 나머지 막상 결승은 뛰지 못했다. 당시 결승전은 3명이 치렀는데 조나슨이라는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 왜냐하면 그는 그전까지 한 번만 진 반면 마틴 클레인에게 11시간40분 접전 끝에 패한 아시카이넨은 두 번 졌기 때문이다.


    ■72세에 올림픽 금메달?



    올림픽 최고령 금메달리스트는 72세 279일 만에 금메달을 딴 스웨덴 사격 선수 오스카 스완이다. 1908년 대회에서 우승한 그는 7회(1920년·안트워프) 대회에서도 또 다시 우승해 12년 전 자신이 세웠던 최고령 기록을 갈아치웠다.


    ■즉석에서 출전한 기자 금메달리스트

    1900년 파리 올림픽에서는 줄다리기도 정식종목이었다. 당시 스웨덴-덴마크 연합팀이 프랑스를 꺾고 우승했다. 그런데 우승팀에는 기자 한 명이 있었다. 그는 덴마크 기자였는데 자국 선수가 부상으로 줄다리기에 나서지 못하자 대신 나서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피 튀긴 수구전쟁

    1956년 멜버른 올림픽 때 일이다. 수구 결승 헝가리-소련전 도중 헝가리 선수가 눈이 찢어져 피를 흘리며 경기장을 떠났다. 그 후 경기가 더욱 격렬해지면서 두 팀 간 패싸움까지 일어날 뻔 했다. 경찰이 투입돼 사태를 가까스로 진정시켰고 게임은 중단됐다. 결과는 당시 4-0으로 리드하고 있던 헝가리가 승리한 것으로 처리됐다. 그 경기는 Blood In The Water Match라고 명명됐다.


    ■희박한 공기가 신기록 제조기 

    1968년 멕시코시티 대회는 해발 2,240m 고지에서 열렸다. 도약, 점프, 단거리 달리기 등은 고지 덕을 봤다. 멀리뛰기에서 미국 밥 비몬이 8.90m를 기록했다. 이는 이전 세계기록을 무려 55cm나 늘린 엄청난 기록이었고 그게 23년 동안 세계 기록으로 유지됐다. 100m, 400m 남자 기록도 깨졌고 세단뛰기에서는 선수 3명이 무려 5차례 세계신기록 경신하는 일도 벌어졌다.


    ■두 번 꺼진 성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기간 중에는 폭우 때문에 성화가 꺼졌다. 순간 어떤 직원이 담배 라이터로 점화했다. 그러나 조직위는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결국 조직위는 성화를 인위적으로 끄고 원래 성화에서 받아놓은 불로 ‘재재점화’를 시켰다.


    ■스포츠맨십의 승리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일이다. 복싱 미국대표 로이 존스는 한국 박시헌에게 일방적으로 앞서고도 2-3으로 판정패했다. 당시 승리가 선언될 때 얼떨떨한 박시헌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러나 로이 존스는 별다른 항의 없이 링을 내려갔다. 그는 이 후 가장 인상적인 복서에게 주는 상인 발 바커 트로피를 받았다. 존스 열세를 선언한 심판 3명은 자격정지를 당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영국 단거리 육상 선수 데릭 레드먼드가 감동을 선사했다. 그는 남자 400m 결선 레이스 도중 허벅지 근육을 다쳤다. 그대로 주저앉은 레이먼드는 진행요원 부축을 거부한 채 혼자 일어나 절뚝거리면서도 걸었다. 그걸 보다 못한 아버지는 내려가 아들을 부축하며 레이스를 마쳤다.

    2004년 아테네 대회 마라톤에 출전한 브라질 선수 리마는 결승점을 10km도 남기지 않은 지점에서 한 관중에게 공격당해 관중석으로 끌려들어갔다. 그래도 그는 곧바로 다시 도로로 돌아와 뛰어 동메달을 따냈다. 그는 스포츠맨십을 구현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쿠베르탱 메달도 받았다.


    ■온통 공짜 손님

    1984년 LA 올림픽은 상업적으로 논란이 많았던 대회였다. 당시 올림픽 스폰서가 된 맥도널드는 흥미로운 이벤트를 발표했다. “미국이 이기면 당신도 이긴다”는 이벤트였다. 티켓을 긁어 나온 종목에서 미국이 금메달을 따면 공짜 음식을 준다는 게 골자다. 금메달을 따면 빅맥, 은메달은 프렌치 프라이, 동메달은 코카콜라였다. 그런데 소련의 보이콧으로 미국이 무더기 메달을 따내면서 맥도널드는 큰 손해를 봤다. 당시 미국은 금 83개, 은 61개, 동 30개 등 무려 174개 메달을 획득했다.

Posted by 김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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