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올림픽 & Money

초기 올림픽은 외부로부터 자금을 제공받는 걸 모두 거부했다. 이런 추세는 1972년까지 이어졌다. 스폰서로부터 오는 자금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결정에 과도하게 영향을 미칠 거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래서 과거 올림픽은 상대적으로 재정 규모가 작았다. 적은 돈으로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쉽지 않다고 판단한 일부 나라들은 과도한 자금을 투자하는 경우도 있었다. 소비력이 약한 가운데 공급량만 늘면 적자가 나게 마련이다. 그게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이다. 그리고 그게 반전이 된 대회는 1984년 미국 LA 올림픽이다. 두 개 대회를 비교해보면 올림픽개최국으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마지막으로는 TV가 올림픽 상업화와 산업화에 미친 영향을 가늠해본다.


 ■올림픽 적자를 다 갚는데 무려 30년이 걸린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몬트리올은 캐나다 프랑스어 문화권인 퀘벡주 주도다. 올림픽 이전까지 몬트리올은 캐나다 경제를 이끌어온 최고 도시였다. 몬트리올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은 당연해보였다. 그런데 올림픽을 치른 뒤 상황은 참혹했다. 쿼벡주가 경기장 건설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올림픽 개막 불과 1년 전이었다. 경기장 건설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었다. 몬트리올 올림픽은 무려 796%의 적자를 기록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등에서 비롯된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애초 예산으로 대회를 치를 수 없었기 때문에 빚을 무리하게 끌어다 쓴 게 근본적인 원인이다. 경기장을 많이 신설한 데다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파업한 여파로 건설비용이 예상보다 크게 불어났다. 게다가 직전 대회인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검은 9월단’ 테러가 발생한 영향으로 테러방지책에 엄청난 예산이 추가로 투입됐다. 올림픽 개최 전 “남자가 아기를 낳을 수 없는 것처럼 올림픽도 적자가 있을 수 없다”는 몬트리올 시장의 큰소리는 허언이 됐다.

 적자의 대표적인 상징이 올림픽 메인스타디움(Montreal Olympic Stiadium)이다. 이 경기장은 원래 ‘The Big O’라고 불렸다. 5만6040석으로 규모도 큰 데다 도넛 모양 지붕에서 비롯된 별명이다. 그런데 이곳은 ‘The Big Owe(거대한 빚)’라는 치욕스러운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개폐식 지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45도 기울어진 높이 175m 짜리 올림픽 타워는 올림픽 기간도 아니라 올림픽이 끝난 뒤 완공됐다. 그리고 지금도 이곳은 2005년 몬트리올 엑스포가 열린 뒤 별다른 메이저 이벤트를 유치하지 못하고 있다. 포스트 올림픽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일단 짓고 보자는 안일하고 근시안적인 생각이 초래한 결과다. 몬트리올이 올림픽 때문에 부담해야할 적자는 무려 10억 달러. 담배세를 올리는 등 방법으로 올림픽이 끝난 뒤 30년이 지난 2006년에서야 그 빚을 다 청산했다.

<몬트리올 올림픽 스타디움>


 ■올림픽 최대 수익(2억5000만 달러)을 올린 1984년 LA 올림픽

 올림픽 사상 재정적으로 가장 크게 번영한 대회다. LA는 1976년 몬트리올,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과는 달리 기존 경기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신설 경기장은 수영, 벨로드롬 등 딱 두 곳 뿐이었다. 그 두 곳 건설비도 세븐 일레븐, 맥도널드로부터 스폰을 받아 충당했다. LA는 스폰스 수익뿐만 아니라 TV 중계권 판매로도 큰 수익을 올렸다. TV 중계권 수익이 올림픽 개최국의 메인 수익이 된 것도 이 때부터다. LA는 세계적인 공항 때문에 IOC로부터 몬트리올대회보다 네 배, 모스크바대회보다 두 배 많은 지원금도 미리 받았다. 이것 때문에 LA는 대회 개최 훨씬 전부터 상대적으로 적은 재정적 부담 속에 올림픽을 맘껏 준비할 수 있었다. 또 소련 등 공산국가들이 대거 불참하면서 비용이 줄어든 것도 큰 흑자를 내는데 일조했다.

 LA가 스폰서 기업을 통해 크게 수익을 내는 걸 목격한 IOC는 바로 이듬해인 1985년, 올림픽 프로그램(The Olympic Program·TOP)을 만들었다 개최국가가 과도하게 올림픽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걸 막기 위한 게 목적이었다. IOC는 TOP에 참가한 기업들에게 올림픽에 대한 독점적인 권리를 주는 대신 값비싼 비용을 요구했다. TOP 회원이 4년 동안 지불할 비용은 최소 5000만 달러다. 그리고 그 돈은 일단 고스란히 IOC로 들어간다.

 LA 올림픽부터 올림픽은 대체적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특히 1996년 역시 미국에서 열린 애틀랜타올림픽은 1000만 달러 흑자를 봤다. LA 올림픽을 본 애틀랜타가 애틀랜타에 본사가 있는 콜라콜라 등 다른 스폰서로부터 엄청난 수익을 얻었기 때문이다.

스포츠가 상업화되는 데는 크게 5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①금전적 보상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시장 경제 ②높은 인구 밀도 그리고(또는) 많은 사람들의 높은 주목도 ③스포츠를 즐길 정도로 높아진 삶의 수준 ④경기장 건설 등을 감당할 거대 자본 ⑤소비와 물질적 가치를 강조하는 문화 등이다. 그걸 고루 만족시키고 있는 게 미국이었고 근래 미국에서 열린 두 차례 올림픽이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것도 이런 미국적인 경제자유주의가 밑바탕을 이뤘다.

 최근 하계 올림픽 중 적자를 본 대회는 2004년 아테네 대회다. 아테네는 전철, 버스, 항공 등 사회적 인프라는 확충했지만 과도한 투자비용 때문에 ‘올림픽 이후 불경기(Post Olympic Slump)’를 겪었다. 그리스 GDP 성장률은 2004년 4.7%에서 2005년 3.7%로, 소비 증가율은 4.2%에서 3.0%로, 수출 증가율은 11.57%에서 3.2%로 크게 떨어졌다. 지금도 경기장, 훈련장 시설 유지에 연간 1000억 원이 넘는 돈이 들어가고 있다.


 ■‘Small Screen, Big Impact.’

 TV 중계가 스포츠에 미친 영향력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어떤 스포츠가 TV로 중계된다는 것은 스포츠 마케팅 측면에서는 엄청난 혁명이다. 그 전까지 작은 동네 잔치였던 게 국가적 이벤트가 됐고, 더 나아가 세계적 빅 이벤트로 성장하는 바탕이 됐다. 과거 경기장 근처 사람들만이 관중이었지만 TV 전파를 탄 뒤에는 전 국민을, 전 세계인이 관중이 됐다. 이렇게 커진 스포츠 가치를 상업적 영업에 이용하려는 기업들이 생겼고 스포츠는 점차 산업화, 상업화, 글로벌화됐다. 관중수, 시청률이 스포츠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잣대가 됐다. 경기 시간은 물론 심지어 경기 룰까지 TV 중계에 맞춰 변형됐다.


<미디어 발전에 따른 스포츠 영역 확대>

<스포츠 중계 광고 미디어 상관도>



 올림픽이 처음으로 TV 중계가 된 것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이다. 그 때에는 국내중계에만 머물렀다. 전 세계적으로 올림픽이 중계된 것은 1956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이었다. TV 중계는 올림픽의 가치를 높이기도 했지만 냉전 시대에는 개최국 정권과 이념을 정당화시키는 데도 이용되는 태생적인 부작용도 있었다. 올림픽이 글로벌화되면서 중계권료도 크게 올랐다. CBS는 1998년 나가노올림픽 중계권으로 3억7500만 달러를 지불하면 됐지만 NBC는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모든 올림픽에 대한 중계권료로 무려 35억 달러를 내야했다. 이런 추세는 전 세계적으로도 똑같이 적용됐다.

<미국 역대 올림픽 중계권 금액>

<대륙별 역대 올림픽 중계권 금액>



양궁은, 물론 한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신속하고 긴장감 넘치는 진행을 위해 세트제로 바뀌었다.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아 지루하게 여겨진 레슬링도 경기 시간을 단축하고 라운드를 늘리는 쪽으로 룰이 바뀌었다. 배구에서, 물론 올림픽 때 처음으로 적용된 것은 아니지만, 랠리 포인트 시스템이 도입된 것도 시청자들에게 박진감을 주기 위해서다.

 경기 시간도 다수 시청자가 있는 국가로 맞춰졌다. 대표적인 게 2008년 베이징올림픽 수영이다. 베이징올림픽 수영 결승은 현지 시간으로 오전에 벌어졌다. 미국시간으로 밤이다. 수영을 좋아하는 미국 사람들이 프라임 타임 전후 마이클 펠프스 등이 출전한 결승을 보게 하기 위해서다.

Posted by 김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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