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티머시 골웨이가 쓴 < 이너게임(THE INNER GAME) > 을 읽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걸 전제로 쓰여진 책입니다. 스스로 그 잠재력을 끄집어내 자발적으로 극대화시키는 방법이 나와 있죠.


 저자는 자아(Self)를 두 가지로 나눕니다. Self 1와 Self 2죠. Self 1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 그걸 그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해내려하면서 고민하는 자아죠. 반면 Self 2는 사람들의 지시와 분석보다는 자신이 갖고 있는 역량을 믿고인지(Awareness), 선택(Choice), 신뢰(Trust) 등 이너게임 3요소(ACT)를 겸비해 성과를 내는 자아입니다.

Self 1의 간섭을 가능한 한 줄이고, Self 2가 흥미롭고 의욕적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해야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저자는 그 공식을 아래와 같이 표현했습니다.

 P(Performance) = p(potential) - i(interference)

 즉, 최대 성과는 잠재 역량에서 방해 인자를 제외시킬 때 나온다는 것이죠. 저자는 이를 자기 역량을 '안에서 밖으로' 끌어내는 새로운 학습방법이라고 설명했습니다.쉽게 설명하면 학생이, 선수가 선생이나 코치가 가르쳐주는 걸 따라 그대로 하기보다는 가진 역량을 스스로 끌어냄으로써 성과를 거두는 식이죠. 지금까지 전통적인 교육 방식은 선생이, 코치가 가르쳐주고 학생이, 선수가 그걸 받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죠. 외부 모델을 '밖에서부터 안으로' 주입하는 식입니다. 이런 방식이 능률, 의욕을 떨어뜨리고 학습 효과도 기대보다 높지 않다는 걸 주입식 교육을 받아본 우리는 잘 압니다.

 제가 이걸 말하는 것은 포항 스틸러스의 최근 상승세를 설명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포항이 올 초 불안감을 극복하고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도 '안에서 밖으로' 학습법을 제대로 활용한 덕분입니다. 그 시발점은 황선홍 감독이죠.

 황감독이 부산에 있을 때는 '헐크'라고 불렸습니다. 경기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선수들에게 여러 번 크게 화를 냈기 때문이죠. 그런 황 감독은 포항으로 온 뒤에는 선수들을 야단치고 잘못을 지적하면서 감독이 원하는 완벽한 축구를 하려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지난해 말 황감독과 인터뷰 한 적 있었습니다. 그 때 제는 "감독으로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졌고 황 감독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기다림입니다. 감독이 아무리 하려고 해도 마음처럼 빨리 이뤄지지 않는 게 많습니다. 감독이 원하는 축구를 제대로 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심지어 오랜 시간이 흘러도 제대로 되지 않을 수 있고요. 계속 기다려야합니다. 급할 때, 위기에 몰렸을 때는 오히려 한 번 더 늦춰야합니다."

 황 감독은 완벽한 축구를 추구하는 지도자입니다. 지금도 물론 그렇습니다. 과거 황 감독은 그런 완벽한 축구를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요구했습니다. 경기에서 잊지 말고 해야 할 일과 반대로 절대 하지 말아야할 일들을, 무려 스무 가지나 지시하곤 했습니다. 냉정하게 보면 요구라기보다는 강요에 가까웠습니다. 긴가민가하는 선수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감독이 원하는 축구를 선수들에게 해보라고 요구한 것이니까요. 이게 전통적인 '밖에서 안으로'의 주입식 학습이었습니다. 완벽한 축구를 해야 한다는 감독의 요구가 Self 1이 됐고 그게 자신들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축구인 Self 2를 하지 못하게 방해한 꼴이죠. 지난 6월 휴식기에 대해 황 감독이 한 말입니다.

 "6월 워크샵에서 선수들의 고민을 들어봤어요. 선수들이 이기고 지는 데에 대해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걸 느꼈죠. 사실 그건 감독이 해야 할 고민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그 때 저는 선수들에게 말했습니다. '이기고 지는 것 민감하게 생각하지 마라. 그건 감독인 내가 책임진다. 너희는 플레이를 잘할 수 있다는 데 노력해라'고요."

 황 감독은 초반 부진한 박성호에게 용기를 불어넣었습니다. 박성호는 황감독이 대전에서 직접 데려온 선수죠. 그가 초반 부진했을 때 포항 팬들은 박성호와 황 감독을 똑같이 비판했죠. 그래도 황 감독은 박성호에게 '이제 포항 1년차다. 적응시간이 필요하니 천천히 준비해라. 나도 선수로서 골을 못 넣을 때 엄청난 비난을 받아봤다. 자기 자신을 잘 컨트롤하면서 준비를 잘 하면 기회는 언젠가는 꼭 온다'고 말했답니다. 의욕부족으로 비판을 많이 받은 고무열에게도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을 많이 해줬고요. 병마와 싸우고 있는 아버지 때문에 집중하지 못한 노병준에게도 가능한 편안한 마음으로 뛸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그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후반기 포항은 서울, 제주, 울산, 수원 등 강팀 4팀과 연속으로 맞붙어 3승1패를 거뒀죠. 자신감과 의욕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 때 황감독이 들고 나온 게 제로톱입니다. 제로톱은 짧은 휴식기 동안 잠시 훈련한 전술입니다. 그게 먹였기 때문에 이긴 것도 있었겠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제로톱이든, 원톱이든, 투톱이든 그걸 수행하는 선수들이 어떤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느냐죠. 감독이 내린 지시에 대해 '이건 좀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 뛰던 모습은 버렸습니다.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축구, 결과보다는 내용에 충실한 축구, 감독의 요구가 아니라 선수들의 특징에 맞는 축구를 하고 있습니다. 박성호는 후반기 살아나기 시작해 지금 4골 4어시스트를 기록 중입니다. 고무열도 4골, 3어시스트로 회복세입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지켜본 경기에서 황감독 배려로 후반 45분을 모두 뛴 노병준도 6골로 팀 상승세를 이끌고 있고요. 6골·8어시스트의 황진성은 초반이나 지금이나 꾸준하게 잘 하고 있습니다. 올림픽대표팀에 떨어진 뒤 실의에 빠진 신광훈과 이명주도 황 감독의 위로와 격려로 받은 새 힘으로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습니다.

 주장 겸 주전 미드필더 신형민이 중동으로 이적했습니다. 고액의 용병 지쿠도 강원으로 갔습니다. 그러면서도 전력 보강은 거의 없었죠. 남은 용병들이 뛰어나게 잘 해주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포항은 최근 무서운 연승행진을 보이고 있습니다. 상위권에 포함된 감독들로부터 경계대상 1순위로 꼽히고 있고요. 비결이 무엇일까요. 다음은 황감독의 말입니다.

 '심리적으로 편해지면서 선수들 모두가 동시에 살아나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전술변화를 주고 적응시간을 준 게 맞아떨어졌죠. 이전 훈련과 경기에서 보이던 주눅든 모습,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위기도 그렇게 넘겼습니다. 포항은 수원을 5-0으로 꺾은 뒤 바로 다음 주 상주에게 패했죠. 경남, 인천을 꺾고 2연승을 달리다가 홈에서 강원에게 무릎을 꿇었고요. 그 때 황 감독은 선수들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모든 잘못을 감독 자신에게 돌렸죠.

 

 



 

 '감독인 내 실수였어요. 내가 멤버를 잘못 짰고 전술도 잘못 썼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내가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없던 일처럼 빨리 잊자'고 말했습니다. 상위 팀과 잘 싸우고 하위 팀에게 패배한 충격에서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다음 날에는 아예 훈련 없이 하루를 쉬었습니다."

 황 감독의 기다림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제 선수들이 골을 넣고는 포항 서포터스 앞에서도 적극적으로 골 세리머니를 합니다. 그전까지 무섭고 높고 차가운 벽처럼 느껴졌던 황감독과 껴안기도 하고요. 훈련장과 클럽하우스에게 웃음과 여유, 대화가 늘어났습니다. 황감독도 많이 변했습니다. 과거 골을 넣어도 심각한 표정으로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지만 지금은 골을 넣으면 기뻐하고 좋은 플레이가 나오면 박수도 치고 칭찬도 합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황 감독이 선수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똑같을 겁니다. 다만 최근 몇 달 들어서 그걸 조금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죠. 그리고 그게 선수들의 마음을 열고 몸을 자유롭게 만든 거고요. 황 감독은 요즘 포항 축구를 "경쾌한 축구"라고 표현하면서 이같이 설명합니다.

 "축구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감독이 선수들을 넣고 빼고 전술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는 것은 그 다음입니다. 축구는 감독이 하는 게 아니라 선수들이 하는 거죠. 감독은 선수들이 스스로 알아서 공을 잘 수 있도록 승패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기다려주면 되는 거고요. 이전에 나는 내가 조직한 대로 축구를 해야 한다는 욕심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걸 버리고 선수들이 원하는 축구를 하려고 합니다. 지금도 물론 때로는 내가 원하는 식으로 끼어 맞추고 싶은 것도 있습니다. 또 실험을 많이 해서 더 완벽한 축구를 하고 싶은 맘도 여전하고요. 하지만 지금은 그게 나만의 생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게 우리 선수들이 좋아하는 방식인지, 거꾸로 스트레스로 여기고 있는 지를 먼저 파악하는 거죠. 운동장에서 움직이는 건 선수입니다. 그래서 옷은 선수들에게 맞아야하고요. 컴퓨터 게임처럼 완벽한 축구는 당분간 제 머릿속에만 담고 있을 겁니다."

감독은 선수가 원하는 축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선수들은 자기 축구를 하면서도 감독의 요구사항을 적용하려고 노력하고요. 그게 잘 어우러지면서 포항은 최근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잠재된 자기역량을 자발적으로 찾아내고 그걸 극대화시키고 있는 포항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요.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분명한 사실은 포항 선수들이 다른 어느 구단 못지않게 즐겁고 공을 차고 있을 거라는 점입니다.

 

Posted by 김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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