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만에 정말 좋은 경기를 봤다. 울산 현대가 우즈벡 원정에서 치른 아시아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 분요드코르전 말이다. 3-1 역전승한 결과 때문이 아니다. 경기에 임하는 울산 선수들의 자세가 시종일관 너무 훌륭했기 때문이다. 설사 패했다고 해도 박수를 보내고도 남을 만한 정상급 플레이였다.

< 전체 하이라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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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 경기를 할 때 선수들을 지탱하는 두 축은 뜨거운 열정과 냉정한 머리다. 열정은 이기기고 싶은 마음이다. 이기고 싶으면 뛰어야 한다. 힘든 걸 참고 한 발, 두 발을 더 뛰어야만 승산이 높아진다. 그것도 한 두 명만 열심히 뛰는 게 아니라 전 선수가 다 열심히 뛰어야한다. 모두 하나 된 마음으로 말이다. 다른 종목도 그렇지만 축구는 유독이 뛰지 않으면 이기기 힘들다. 자칫 쉬엄쉬엄 했다가는 약체에게 패할 수 있다. 그리고 축구는 선수 개개인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가 야구, 농구 등에 비해 무척 적고 개인 플레이도 수치화하기 힘들다. 공이 쉼 없이 움직이고 선수들도 함께 계속 뛰며 카메라와 팬들의 눈이 그곳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볼을 소유하는 시간도 짧다. 그래서 축구는 내가 아니라 팀 전체를 위해서, 그리고 남들이 보지 않은 곳에서 한 발, 두 발을 더 뛸 때만이 이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설기현이 "축구는 동료들을 위해 뛰는 운동"이라고 정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울산은 이기고자 하는 열정이 강했다. 전반 4분 선취골을 내준 뒤 골을 넣으려고 애쓴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울산은 전반 30분 동점골을 넣고도 만족하지 않았다. 선수들 전부가 역전골까지 넣으려는 몸부림이 강렬했다. 전반 41분 하피냐의 투혼이 대표적인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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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피냐는 볼을 가로챈 뒤 돌파를 하다가 수비수에게 걸려 넘어지면서 바닥에 구른 뒤에도 또 다시 일어나 뛰려고 했다. 용병 선수가 저렇게 하면 국내 선수들에게는 큰 도움과 큰 자극이 된다. 하피냐 뿐만이 아니다. 국가대표팀 경기를 뛰기 위해 중동을 오고 간 이근호, 김신욱은 줄기차게 뛰면서 공격은 물론 끝까지 수비도 열심히 했다. 경기 내내 둘이 보여준 의욕은 울산 선수들에게 모범이 될 만 했다. 다른 울산 선수들도 어느 누구 꼬집어 흠잡을 데가 없을 만큼 정신적으로 강했다. 그리고 그게 후반 7분 김신욱의 헤딩 역전골과 후반 26분 이근호의 헤딩 쐐기포로 이어졌다. 물론 울산은 여러 번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강호도 약체와 싸우면 몇 차례 위기 정도는 맞게 마련이다. 울산과 분요드코르는 아시아 4강에 오른 강팀. 기회와 위기를 주고받은 것은 울산이 못해서가 아니라 두 팀 기량이 엇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력이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상황 속에서, 그것도 원정에서 울산은 두 골차 완승을, 그것도 역전승으로 이끌었다. 그 밑바탕은 투지요, 열정이요, 투혼이다.

 그러나 축구는 열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열정만 앞세운 팀은 효율성이 떨어지고 흥분에 도취되기 쉽다. 그렇게 되면 들어가는 노력에 비해 아웃풋은 적다. 그리고 경기가 어려워지면 어처구니없는 반칙과 행동으로 자신과 팀을 자해하는 행위까지 한다. 그 때 필요한 게 얼음처럼 차가운 머리다. 고난, 흥분, 희열, 분노, 나태, 안일함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흔들리지 않게 컨트롤하면서 자기 플레이를 계속 똑같이 유지할 수 있는 힘은 바로 냉정한 머리다.

 

 울산은 소름 끼칠 정도로 냉정했다. 이근호가 세 번째 골을 넣은 뒤 하는 제스처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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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 26분 3-1 쐐기포였다. 승부를 가를 수 있는 득점. 그러나 이근호는 골을 넣은 뒤 침착한 표정으로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더니 두 손을 위에서 아래로 반복해서 내렸다. 기쁨, 흥분을 삭이고 끝까지 냉정해야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게 선수들은 끝까지 집중시켰고 다른 선수들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로부터 4분 후인 후반 30분. 울산은 페널티킥을 내줬지만 그걸 김영광이 잘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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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김영광이 쳐낸 건 아니다. 그러나 김영광은 킥의 방향을 정확하게 읽은 뒤 엄청난 순발력으로 몸을 제대로 날렸다. 김영광의 컨디션은 너무 좋았고 그걸 눈치 챈 키커는 맨 구석으로 차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포스트에 때리고 말았다. 골문 안으로 향해도 분명히 김영광 손에 걸렸을 것이다.

 그에 앞서 페널티킥을 내주는 장면에서 울산은 더 차가왔다. 분명히 곽태휘의 핸드볼 파울이다. 그러나 파울 장면에서 곽태휘 발은 페널티지역 밖에 있다. 울산은 흥분하면서 페널티킥이 아니라고 강하게 항의할 법도 했다. 그러나 울산 선수들은 그렇지 않았다. 심판에게 짧고 확실하게 이야기하고는 곧바로 냉정하게 승부차기 수비에 돌입했다. 김영광의 표정은 저승사자처럼 냉정했다. 그렇게 울산이 냉정하면 할수록 분요드코르는 초초하게 마련이다. 분요드코르가 실축한 데는 울산의 그런 냉정함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경기를 보고 가장 크게 느낌 점은 "저건 잘못된 선택인데"라고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장면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실점하는 장면에서는 너무 이른 시간인데 울산 압박이 헐거웠던 게 흠이었다. 그리고 그 후 울산은 몇 차례 위기를 더 맞았다. 그러나 그런 몇 차례 장면을 빼고는 울산 선수들이 내린 결론은 대부분 옳았고 결론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신속했다.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반대쪽으로 패스를 했어야지" "왜 그렇게 무리하게 슈팅을 날려"라는 느낌이 들 만한 장면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주요 장면마다 울산 선수들이 수적으로도 거의 밀리지 않았고 앞서고 있어도 시간을 끄는 치사한 동작은 전혀 없었다. 울산이 보여준 것은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가 조합된 훌륭하면서도 정정당당한 플레이였다. 3-1로 역전승한 결과가 아니라 울산 선수 전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는 뜨거운 열정과 흔들리지 않은 차가운 머리로 하나 된 플레이를 함께 엮어낸 자세에 박수를 보낸다.

 




 

Posted by 김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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