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메달보다 중요한 '인권' 위해 싸운 올림픽 투사들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세계인이 모이는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에서는 정치적인 의사 표현이 엄격하게 금지된다. 이 규정을 어긴 선수가 메달을 박탈당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드러낸 선수들도 있다. 이런 영웅들의 희생 속에 오늘날 올림픽은 인종과 종교를 가리지 않은 모든 선수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됐다.
    미국 ABC뉴스는 3일 역사 속의 올림픽의 '인권 투사들'을 소개했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남자 육상 200m 시상식. 1위, 3위에 오른 흑인 육상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는 고개를 숙이고 검은 장갑을 낀 손을 하늘로 뻗었다. 신발은 신지 않고 검은 양말만 신은 채였다.
    미국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이들은 이 자세를 유지했다. 
    이들과 함께 시상대에 오른 호주의 백인 선수도 손을 들지는 않았지만, 흑인 인권을 상징하는 배지를 착용해 암묵적인 동참 의사를 밝혔다. 훗날 
    두 흑인 선수는 올림픽에서 정치적인 의사 표현이 금지돼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미국에서 벌어지는 흑인 인권투쟁을 세계에 알리려고 이런 행위를 했다고 밝혔다. 신발을 신지 않은 차림은 흑인들이 처한 빈곤을 상징했다.
    스미스는 "경기에서 승리했을 때는 '흑인 미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으로 인정받지만, 내가 뭔가 잘못하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날 '검둥이'라고 욕한다"며 "우리는 흑인이고 그 사실이 자랑스럽다. 흑인인 미국인들은 우리의 행동을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흑진주', '검은 가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여성' 등으로 불리던 윌마 루돌프는 신체적인 어려움을 딛고 세계 최강으로 성장한 뒤, 미국의 흑인 어린이들이 운동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재단을 꾸린 인물이다.
    2㎏에 불과한 미숙아로 태어난 루돌프는 폐렴, 성홍열 등 심각한 질병 등에 걸렸고 소아마비까지 겪으면서 한때 다리에는 보조기구까지 착용해야 했다. 의사는 그가 걷지 못할 거라고 전망했다.
    의사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질병에서 회복해 선수로 성장한 루돌프는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루돌프는 100m, 200m, 400m 계주 등에서 우승해 올림픽 3관왕에 올랐다.
    루돌프가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치러진 행사는 흑인과 백인 선수가 함께 국민의 환영을 받았다. 흑인과 백인이 함께 행사를 치른 건 미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이후 루돌프는 '윌마 루돌프 재단'을 설립, 흑인 아이들이 운동선수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는 또 다른 선수의 투혼도 큰 화제였다.
    마라톤 결승선에 가장 먼저 들어온 에티오피아의 선수는 거의 무명이었다. 발엔 신발도 신지 않았다. 에티오피아 왕실 근위병 출신의 아베베 비킬라는 아프리카 흑인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이탈리아는 무솔리니가 주도하는 파시즘이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흑인인 비킬라는 파시스트들의 상징이 가득 들어찬 도로를 누구보다 빨리 달렸다.
    4년 뒤 도쿄에서 다시 올림픽 마라톤에 도전한 비킬라는 이번엔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 덕분인지 기록은 더 빨라졌다. 두 대회 연속으로 마라톤을 제패한 비킬라는 투혼의 상징이 됐다.
    이밖에도 2012 런던올림픽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역사상 최초로 유도 종목에 도전한 여성 선수 워잔 샤히르카니(당시 16세)와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흑인이라는 편견을 딛고 세계 정상에 오른 복싱 전설 무하마드 알리 등이 올림픽의 '투사'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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