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0년 전까지만 해도 올림픽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은 높지 않았다. 올림픽은 마케팅 장이 아니라 정치적 이념을 선전하는 수단으로 인식됐다. 기업 최고경영자의 개인 취향과 관심에 따라 골프, 테니스 등 특정 종목을 후원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을 뿐이다.

국제 정치의 긴장감이 고조될수록 올림픽에 관심을 갖는 기업들은 크게 줄어들었고 올림픽마다 끊이지 않는 사건·사고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골치를 썩곤 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선 팔레스타인 극좌파 테러단체 ‘검은 9월단’의 인질사건이 발생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테러와 안보에 대한 우려로 엄청난 개최비용을 썼고 10억달러가 넘는 적자가 났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구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규탄하는 미국을 위시한 여러 서방국가들이 보이콧했고 1984년 LA 올림픽에는 반대로 구소련 등이 보복적 의미로 불참했다.

LA 올림픽도 반쪽짜리였지만 마케팅에서는 혁명적 변화가 있었다. 정부 지원을 배제하고 43개 기업을 공식 후원사로 지정해 지원받는 식으로 상업화됐고 2억2500만달러라는 엄청난 흑자가 났다. 이를 계기로 상업화에 속도를 낸 IOC는 1985년 ‘원스톱 쇼핑’ 개념을 스폰서십 프로그램에 적용했다. 번거로운 계약 과정을 4년에 한 번만 계약하는 식으로 단순화한 것이다. 그렇게 코카콜라, 맥도널드, 삼성전자, 비자카드 등이 쉽게 스폰서로 참여했다. IOC는 공식 스폰서들의 독점권을 강하게 보호했고 다른 경쟁기업들은 스폰서가 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그러자 많은 기업들은 올림픽 가치를 교묘히 이용하는 ‘앰부시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앰부시 마케팅’을 ‘기생 마케팅’이라고 폄하한 IOC는 이들과 끊임없는 장외 전쟁을 벌여야 했다.

 

브라질 정부는 2009년 10월 ‘올림픽 특별법’을 제정해 공식 스폰서 외에는 올림픽을 상징하는 단어와 어휘들을 쓰지 못하게 했다. 동시에 IOC는 앰부시 마케팅 기업들의 활동무대가 소셜미디어로 옮겨갔다고 판단, IOC 헌장 40조항을 수정해 올림픽 기간 중 비공식 후원기업들의 마케팅 활동을 부분적으로 허락했다. 조항의 수정으로 공식 스폰서가 아니더라도 올림픽 대표선수 등을 개별 후원하는 기업들은 IOC에 신고만 하면 올림픽 기간 중 마케팅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몬델레즈 인터내셔널, 제너럴 밀스, 언더 아머, 아디다스, 게토레이 등이 이 같은 혜택을 보게 됐다. 과거 코카콜라-펩시, 후지필름-코닥, 비자카드-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아디다스-리닝처럼 공식 스폰서와 비공식 기업 사이 은밀하게 진행된 공방이 리우에서는 당당하게 벌어지게 된 것이다. 특히 지난 30여년 동안 IOC와 애증의 관계 속에 최고 앰부시 마케팅 전략을 선보인 나이키는 이번에는 미국대표팀 공식 후원사로 나서면서 IOC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동시에 나이키를 턱밑까지 추격한 언더 아머도 장외가 아니라, IOC가 공식적으로 허락한 소셜미디어라는 가상무대에서 나이키와 한판 붙게 됐다. 만일 언더 아머가 예상을 뛰어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면 IOC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까.


 

 

Posted by 김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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