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고교축구대회 장면. 기사와 관계 없음

 

 

 지난달 거스 히딩크 감독이 네덜란드에서 한국 취재진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게 무엇입니까.’
 히딩크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5~6세부터 18세까지 어린 선수들을 발굴해서 모든 연령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
 평범하지만 절대적으로 옳은 답이다. 육성시스템이 바뀌지 않은 한 한국 축구는 발전할 수 없다.
 현재 한국 축구의 육성 시스템은 ‘성적 지향형’ 구조다. 초등학교는 넓은 경기장에서 11대11로 경기한다. 개인기보다는 체력이 중요시되고 개인기를 익힐 기회는 줄어든다. 게다가 뛸 기회가 적은 저학년은 형들이 뛰는 것만 지켜보면서 제자리걸음을 해야 한다.
 중학교로 가면 사실상 직업선수의 길로 들어선다. 공부와 축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축구에 재능이 있지만 공부를 포기할 수 없는 학생들은 축구를 접는다. 축구를 계속할 학생들은 이때부터 성적 지상주의 속에 내던져진다. 저학년들은 벤치에서 3학년 형들이 축구하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 개인기 습득, 꾸준한 경기 경험 축적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중학교 선수 가운데 최고 유망주는 프로산하 고교클럽으로 간다. 그 다음은 대개 고교팀으로 가고, 그 다음은 사설클럽으로 간다. 프로 산하 클럽 선수들은 양질의 교육을 받는다. 반면 시설이 열악한 사설 클럽 학생들은 비용도 많이 들고 학업도 제대로 못 받는다. 장훈고 윤종석 감독은 “사설 클럽 학부모들은 운동장과 숙소를 빌리는데 돈을 또 써야한다”며 “또 적잖은 클럽 학생들은 방송통신고로 옮기면서 공부와는 아예 담을 쌓는다”고 말했다. 고교 선수들의 최고 목표는 프로 또는 대학행이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건 대회 성적이다. 성적 지상주의는 더욱 노골화된다. 고교 졸업 후 전망도 불투명하다. 프로로 간 유망주들은 경기경험 부족에 시달리고 대학 선수들은 졸업 후 직업 선수가 될 가능성이 낮은 상황 속에서 ‘희망고문’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안쓰러운 학생 선수들을 살려면 한국의 유소년 육성 시스템이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초등학교에서 8대8 방식으로 연령대별 리그가 시행돼야 한다. 중·고교에서는 1.5살 터울(1·2학년 한 팀, 2·3학년 한 팀) 리그가 분리 운영돼야 한다. 동시에 대한축구협회가 지도자·학부모를 설득해 프로처럼 승강제를 실시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어린 선수들은 성적이 아니라 성장 지향적인 축구를 배우게 된다. 초등학교 선수들은 연령대별로 기본기를 습득하면서 또래 친구들과 꾸준히 경기할 수 있다. 공부와 축구를 무조건 병행하면 중학교에 가면서 축구를 포기하는 유망주들은 줄어든다. 중·고교 모두 1.5살 터울 리그가 실행되면 저학년들도 계속 경기에 출전하면서 기량을 향상시킬 수 있다.
 고등학교부터는 직업 준비 과정으로 봐야 한다. 학생 선수에게 현실적으로 필요한 내용으로 학업을 시키면서 운동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고교 졸업생들 중 선수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은 대학이 아니라 프로·실업으로 가야 한다. 반면 선수로 성공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학생들은 대학교 운동 관련 학과에 입학해 다른 진로를 준비해야 한다. 그외 학생 선수들은 축구는 취미로만 즐기면서 다른 공부를 하면 된다. 이용수 세종대 교수는 “어릴 때부터 20세 전후까지 선수를 철저하게 관리하는 시스템이 새롭게 구축되지 않는다면 한국 축구에 희망을 걸기 힘들다”고 말했다.

Posted by 김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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